한국학자료센터

  • Open API
  • 사이트맵
  • 이용안내

한국학 자료포털

통합검색

  • 상세검색
  • 문자입력기

 

 

 

 
 
。누가 노비가 되었는가?
。도망간 노비를 어떻게 찾았을까?
。노비, 어떻게 도망가고 어떻게 잡혀왔을까?
。추노꾼이 정말 존재했을까?
。노비들에게 정말 낙인을 찍었을까?
。상전을 죽이기 위한 비밀결사가 있었는가?

。노비의 인생역전, 어디까지 가능했을까? 
。주인과 노비사이, 갈등만 있었을까? 
。소현세자는 독살되었을까?
。소현세자빈 강씨는 왜 사약을 받았을까?
。소현세자의 살아남은 아들은 뒤에 어떻게 되었을까?

1  누가 노비가 되었는가?

조선시대에는 ‘노비로 태어나는 자’가 노비의 주종을 이루었다. 그렇다면 누가 노비로 태어나는가? 노비를 부모로 둔 자가 바로 노비로 태어난 자이다. 아버지나 어머니 중 한 명이라도 노비면 그 자식은 노비가 되는 것이 민간의 관행이었다. 여자종 한 명만 가지고 있어도 ......

≫≫ 자세히보기

2  도망간 노비를 어떻게 찾았을까?

도망간 노비를 찾는 일은 전적으로 노비를 소유한 ‘주인’의 몫이었다. 국가 소유의 ‘공노비’는 전담기구로 ‘추쇄도감(推刷都監)’을 설치하여 대대적인 수색 작업을 벌였고, 개인 소유의 ‘사노비’는 해당 소유주가 그 소재를 파악한 뒤 관아의 도움을 빌어 잡아왔다.

≫≫ 자세히보기

3  노비, 어떻게 도망가고 어떻게 잡혀왔을까?

농경사회에서 갈아먹을 논밭이나 논밭을 살 돈도 없이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도망을 가기 위해서는 경제적 자립기반을 갖거나 이를 도와줄 수 있는 ‘아는 사람’이 있어야만 했다. 오늘날 다른 나라로 이민 가는 사람들이 연고를 ......

≫≫ 자세히보기

4  추노꾼이 정말 존재했을까?

도망노비를 잡고자 하는 소유주의 수요로 인하여 전문 직업인으로서의 추노꾼의 실존 가능성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으나 자료들 통해 구체적으로 고증되지는 않는다. 다만 추노를 위해 돈을 주고 다른 사람을 고용했다는 사례를 통해 추노를 직업으로 삼은 추노꾼이 존재했을 가능성 ......

≫≫ 자세히보기

5  노비들에게 정말 낙인을 찍었을까?

낙인은 노비의 표식이라기보다는 죄인에게 내리는 형벌 가운데 하나였다. 죄인의 얼굴이나 몸에 먹물로 죄명을 새겨 넣는 것은 중국 고대의 5가지 형벌 가운데 하나로, 조선시대의 법전인 『경국대전』에도 실려 있다. 또한 도망노비에게 노비의 낙인을 찍는 것은 형벌로서 한 때 ......

≫≫ 자세히보기

6  상전을 죽이기 위한 비밀결사가 있었는가?

조선후기는 양반 사회를 뒤흔드는 사회 변혁기로 사회 불만 또는 반발세력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었다. 이른바 검계, 살주계, 향도계 등이 바로 그러한 움직임으로 이들 비밀 결사는 모두 노비, 서얼 등 사회적 불만세력들의 모임이었다. 이들은 자신의 주인 혹은 양반 전체를 ......

≫≫ 자세히보기

7  노비의 인생역전, 어디까지 가능했을까?

노비로 태어났으나 신분을 숨긴 채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생활까지 한 인물이 있었다. 영조대의 엄택주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1719년(숙종45)에는 생원시에 합격하고, 1725년(영조1)에는 15등의 좋은 성적으로 문과에 급제하였다. 급제 후에는 연일현감에 임명되어 이 ......

≫≫ 자세히보기

8  주인과 노비사이, 갈등만 있었을까?

상전과 노비 사이에 갈등만 있었다면 양반의 나라, 조선왕조는 100년도 유지되지 못했을 것이다. 양반들이 자신들의 특권을 유지하면서 효율적으로 노비를 경영하기 위해서는 노비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방법 밖에 없었다. 그 방법 중 최고의 대책은 소유 노비와 계(契)를 ......

≫≫ 자세히보기

9  소현세자는 과연 독살되었을까?

인조가 소현세자를 독살할 동기는 충분하였으나 세자의 병세가 이미 심각하여 실제로 독살을 감행할 필요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명백하게 독살이라고 단정지을만한 구체적인 증거도 나오지 않았다. 결국 소현세자는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로 치료를 받던 중 결국 사망에 이 ......

≫≫ 자세히보기

10  소현세자빈 강씨는 왜 사약을 받았을까?

인조는 세자가 죽으면 세손에게 왕위를 전하는 원칙을 어기고, 차자 봉림대군을 세자로 세워 왕위를 잇게 하였다. 이런 인조에게 강빈과 그 아들들은 큰 골칫거리였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강빈과 반목하던 소의 조씨가 인조의 수라상에 올린 전복구이에 독약이 넣은 주모자로 강 ......

≫≫ 자세히보기

11  소현세자의 살아남은 아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제주도로 유배된 소현세자의 세 아들 중 살아남은 막내 이석견은 제주에서 남해로, 남해에서 다시 강화로 유배지를 옮겨가며 오랜 귀양살이를 하다 1656년(효종7)에야 풀려났다. 이후 이름을 이회(李檜)로 개명하였고, 경안군(慶安君)에 봉해졌다. 이회는 허확의 딸과 혼인 ......

≫≫ 자세히보기

한국학중앙연구원 주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