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의 어머니 명성왕후 김씨(박정수 분)는 희빈 장씨(이소연 분)를 노골적으로 싫어한다. 숙종(지진희 분)과의 대화에서 그녀는 희빈 장씨가 자신과는 다른 남인 집안 출신일 뿐만 아니라 천첩 소생이기 때문에 도저히 궁에 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렇다면 실제로 희빈 장씨의 출신은 어땠을까?
희빈 장씨(禧嬪 張氏)의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할아버지 장응인(張應仁, 1594-1660) 이후로 인동 장씨 집안에서는 20여명의 역관(譯官, 오늘날의 통역관)이 나왔는데, 그 중 역과(譯科)에 수석으로 합격한 사람이 7명일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다. 아버지 장경(張烱, 1623-1669)은 사역원(司譯院) 부봉사를 지냈는데, 부인으로 고성립(高誠立)의 딸 고씨(高氏, 1625-1645)와 사역원 첨정 윤성립(尹誠立)의 딸 윤씨(尹氏, 1626-1698)를 두었다.
장수(張壽) ┳ 장경인(張敬仁) ┳ 장현(張炫) ━ 장천익(張天翼)
│ ┕ 장찬(張燦)
│
┕ 장응인(張應仁) ━ 장경(張烱) = 고씨(高氏) ━ 장식재(張栻載)
= 윤씨(尹氏) ┲ 장희재(張希載)
┝ 딸(女)
┕ 희빈 장씨(禧嬪 張氏)
희빈 장씨는 첩 윤씨의 소생이었는데, 생모 윤씨는 조사석(趙師錫, 1632-1693)의 처갓집 종이었다고 한다. 조사석이 젊었을 때 사사로이 통했었고, 장경에게 시집간 뒤에도 때때로 조사석의 집을 오갔었다고 한다. 조사석은 남인으로서 벼슬이 판서를 거쳐 정승에 이르렀는데, 이는 조카 동평군(東平君) 이항(李杭)과 장렬왕후 조씨(莊烈王后 趙氏, 1624-1688)의 후원에 힘입었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숙종실록』13년 6월 16일) 아마도 역관의 딸인 희빈 장씨가 궁녀로 입궐할 수 있었던 데에는 조사석과 동평군의 도움도 컸으리라 짐작된다.
희빈 장씨의 입궐에는 당시 역관으로 활동했던 종백부 장현(張炫, 1613-1695)의 후원도 컸다.
장현(張炫, 1613-1695)은 역관으로서 인조 15년(1637) 소현세자(昭顯世子)와 함께심양(瀋陽)에서 6년간 머물렀고, 효종 3년(1652) 인평대군(麟坪大君)을 배종하여 청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등 여러 차례 사신 행차에 나섰었다. 이 때 장현은 다른 역관들과 함께 사사로이 무역을 하여 부를 축적하였다. 당시 조정에서 역관들의 사무역을 벌할 때 장현 역시 처벌 대상에 포함되었으나, 딸이 궁인이라는 이유로 곧 사면되었다.(『효종실록』 4년 윤7월 2일)
『숙종실록』13년 6월 16일
이후 장현은 인평대군의 아들 복창군(福昌君) 이정(李楨, 1641-1680)과 복선군(福善君) 이남(李柟, 1647-1680)이나 남인의 영수 허적(許積, 1610-1680)이 청나라로 사실 갈 때 따라가면서 이들과 친분을 돈독히 하였다. 그러다 경신환국 때 남인과 함께 형벌을 받고 멀리 유배되었다.(『숙종실록』 6년 5월 7일)
장현은 자신의 딸과 함께 조카 희빈 장씨도 궁녀로 입궐시켰는데, 이는 자신의 부와 인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정치권력에 접근하기 위함이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궁녀는 왕과 왕비의 처소를 비롯한 왕실 곳곳에 배속되어 궐 안 사정에 밝을 수밖에 없었으므로, 당시의 정치 흐름을 파악하는 데 유용했을 것이다.
희빈 장씨가 숙종과 인연을 맺은 것은 1680년(숙종 6) 인경왕후(仁敬王后)가 승하한 뒤였다. 당시 숙종의 어머니 명성왕후는 정권에서 남인들을 몰아내면서 남인 출신인 희빈 장씨 또한 왕의 승은을 입은 궁녀임에도 불구하고 궐 밖으로 내쳤다. 이후 희빈 장씨는 계비 인현왕후 민씨(仁顯王后 閔氏, 1667-1701)의 건의로 재입궁할 수 있었으나 명성왕후의 완강한 반대로 무산되었다가 1683년(숙종 9) 명성왕후가 승하한 뒤에야 재입궁할 수 있었다.(『숙종실록』12년 12월 10일)
미색이 뛰어났던 희빈 장씨는 집안의 이해관계에 따라 궁녀로 입궐하였으며, 종백부 장현과 어머니의 인적 네트워크망에 의해 조사석, 장렬왕후 등 남인측의 후원으로 숙종에게 승은을 입을 수 있었다. 이후 서인측의 명성왕후에 의해 궐 밖으로 내쳐지면서 고초를 겪기도 했으나 명성왕후가 승하함으로써 다시 재입궁할 수 있었다. 드라마 <동이>에서 희빈 장씨가 재입궁하는 시점이 바로 이 때라고 볼 수 있다. 실제 역사와 다른 부분은 희빈 장씨를 후원했던 장렬왕후는 등장하지 않고, 그 반대 세력으로 이미 승하한 명성왕후를 살려냈다는 점이다.
필자 : 지두환(국민대학교 역사과교수)
■ 참고문헌
지두환, 『장희빈』, 역사문화, 2002.
지두환, 『숙종대왕과 친인척』, 역사문화, 2009.
김아네스, 「장희빈, 악녀의 누명을 쓴 정치의 희생양」, 『내일을 여는 역사』23, 내일을 여는 역사, 2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