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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실 잔치의 공연복은 어떤 것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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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동이> 5회에서 장옥정이 입궁할 때 은평군의 생일 축하연이 열리는 장면이 나온다. 생일 축하연에서는 장악원(掌樂院) 악공들이 연주하는 장면과 함께 화려한 옷을 차려입은 여령들이 춤을 추는 등 다양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화려한 볼거리에 눈이 즐거웠지만, 실제 왕실 잔치에서도 각양각색의 옷을 입었을까?

왕실의 잔치는 경사를 맞이한 분에게 음악과 춤을 올려 축하하는 것으로, 장악원에서 음악과 춤을 담당하였다. 왕실 잔치는 왕비 이하 내외명부 즉 여자들이 참석할 수 있는 내진연(內進宴)과 왕 및 문무백관 등의 남성으로 구성된 외진연(外進宴)으로 구분하였다. 드라마 속에 등장했던 잔치에서는 내명부 수장인 왕비와 대왕대비 이하 비빈이 참석하고 있었으므로 내진연의 형식인 것이다.

궁중의 잔치는 일종의 종합예술로서 ‘의례 공간’과 ‘공연 공간’으로 구성되어 왕을 중심으로 의례가 진행되는 동안 음악과 춤이 어우러지는 예(禮)와 악(樂)의 무대였다. 왕과 그 가족들 및 내외명부의 수장이 있는 의례 공간에서는 왕실의 예복이 입혀졌다. 규모가 큰 왕실잔치인 진연(進宴)에서 왕과 왕세자는 용포를 입으며 왕비와 대왕대비는 적의에 대수(大首, 예장용 머리)를 착용하고 비빈은 원삼, 당의를 착용한다.(『상방정례』)

숙종의 결단력은 왕비의 수식(首飾, 머리장식)을 간소화한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전까지 체발(髢髮, 가체의 재료로 머리 한단) 68단 5개를 사용하던 관례를 체발 20단으로 바꾸었다. 당시 문제시되었던 가체(加髢)의 폐단을 금하여 왕실이 본보기가 되고자 함이었다. 지금 볼 수 있는 왕비 적의의 머리가 체발 10단임을 생각할 때 당시 가체의 규모가 얼마나 컸는 지 짐작할 수 있다.(『고종명성후가례도감의궤』) 그러나 영조대까지 가체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이를 다시 금했었던 사실로 볼 때(『영조실록』 39년 11월 9일) 당시 여인들이 가체를 얼마나 중히 여겼는지 알 수 있다.

궁중잔치에 춤을 담당하던 여령(女伶)의 가체도 그 크기가 대단하였는데 순조대까지 높고 큰 여령 머리를 궁중잔치에서 볼 수 있었으며 헌종대에 이르러서 『신축진찬도병』에서 보이는 작은 다래머리가 된다.

 

『기축진찬의궤』(1829) - 여령 복식
왼쪽의 꽃으로 장식한 것이 숙종대 여령의 가체 달린 화관이다.

 

『신축진찬도병』(고궁박물관) - 여령 복식
고종대 여령의 모습.

 


숙종 때 거행된 왕실잔치 기록인 『기해진연의궤』와 잔치 그림인 「기사계첩(耆社契帖)」을 통해서 당시 공연을 담당했던 장악원 사람들의 옷차림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기사계첩(耆社契帖)」- 석연도

장악원의 음악 교육을 담당하는 권착(權着)은 악공을 거느리고 연주의 지휘, 감독을 맡았다. 『기해진연의궤』에는 권착의 옷이 2벌로 나와 있어 2명의 권착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복색은 오사모(烏紗帽, 검정색 얇은 비단으로 만든 모자)를 착용하고 흑주의(黑紬衣, 목둘레가 둥근 흑색단령)를 입고 오각대(烏角帶, 허리에 띠는 검정색 각대)를 띠고 흑화자(黑靴子, 검정색 가죽의 목이 긴 신발)를 신었는데, 이 모습은 <기사계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기해진연의궤』에 의하면 연주자인 전상공인(殿上工人)은 32명으로 화화복두(畵花幞頭, 양쪽에 각이 달린 검정색 모자로 앞이마에 꽃무늬를 그려 장식함)를 쓰고 홍주의(紅紬衣, 목둘레가 둥근 홍색의 단령)를 입었다.

노래를 담당하는 가동(歌童)은 4명으로 자적두건(紫的頭巾)을 착용하고 녹주의(綠紬衣)를 입고 자적대(紫的帶)를 띠었다.

춤을 추는 무동(舞童)은 16명으로 흑색, 유록(有綠)색, 초록색, 남색, 다홍색의 오색관복을 입었다. 「기사계첩」에는 처용무가 보이는데 이는 오방 처용으로서 동방의 청, 남방의 적, 서방의 백, 북방의 흑, 중앙의 황색 포를 입는다.

집박(執拍)은 연주의 지휘자로서 「기사계첩」에는 전상공인의 중심에 서 있다. 모라복두(冒羅幞頭, 검정색 비단으로 만든 모자로서 사모보다 각이 있음)를 착용하고 녹사의(綠紗衣, 녹색의 비단으로 만든 둥근 깃의 예복)를 입고 오정대(烏鞓帶, 검정색의 허리띠)를 띠고 있다.

음악인의 복식은 계급이 낮을수록 화려했는데 잔치를 받으시는 분의 흥을 돋우기 위함이었다.

 
「기사계첩」제3면 석연도의 부분
- 권착 복식
중앙 상단의 두 명이 권착이다
  「기사계첩」제3면 석연도의 부분
무동, 집박, 전상공인, 가동의 복식

가장 앞줄의 오색 관복을 입은 무동들 가운데에 박(拍)을 들고 서있는 사람이 집박이다. 그 뒤로 홍색 옷을 입고 있는 것이 전상공인이다.

 


필자 : 김경실(한국궁중복식연구원 학예연구장, 성균관대학교 의상학과 겸임교수)

 

■ 참고문헌
『기해진연의궤(己亥進宴儀軌)』
『고종명성후 가례도감의궤(高宗明成后 嘉禮都監儀軌)』
『숙종효현후 가례도감의궤(肅宗孝顯后 嘉禮都監儀軌)』
『숙종효정후 가례도감의궤(肅宗孝定后 嘉禮都監儀軌)』
『상방정례(尙方定例)』
「耆社契帖」(1719), 이화여대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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