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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궁녀 위의 궁녀, 감찰 상궁이 존재했을까? 조회수 : 97774 
 

 

     

장옥정(이소연 분)의 사가에서 약재를 들여온 동이(한효주 분)가 중전 시해 사건에 휘말리며 곤욕을 치르는 과정을 보면서, 군관보다 무서운 '감찰 상궁'의 기세에 시청자들은 모두 긴장하게 된다. 조선의 궁궐에 ‘감찰부’와 ‘감찰 상궁’이 존재했던 것이 사실일까? 사실이라면 과연 어떤 곳이었을까?

공식적으로는, 조선시대 궁녀 조직에 ‘감찰부’는 없었다. 물론 ‘감찰 상궁’이라는 직책도 없었다. 『경국대전』의 궁녀 조항에 감찰부는 물론 감찰 상궁이 규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공식적으로는 조선시대 궁녀 중에 분명히 감찰 상궁이 있었다. 감찰 상궁은 감찰 시녀(侍女)라고 달리 불리기도 했다. 『조선왕조실록』에 감찰 상궁 또는 감찰 시녀에 대한 기록이 등장하므로 그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공식적인 조선시대 궁녀 조직은 『경국대전』에 규정되어 있다. 대전(大殿) 즉 왕의 궁녀는 내명부(內命婦) 조항에, 세자궁의 궁녀는 세자궁 조항으로 구분되어 있다. 내명부 조항에 의하면 궁녀는 종9품에서 시작하여 정5품의 상궁(尙宮)을 최고로 하였고 그 이상은 후궁이었다. 이는 내명부가 양반 관료의 조직에 대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조선시대 양반관료 조직은 크게 9품에서 5품까지의 사(士)와 4품에서 1품까지의 대부(大夫)로 구분되었는데, 내명부도 9품에서 5품까지의 궁녀와 4품에서 1품까지의 후궁으로 양분되었던 것이다. 사와 대부가 합쳐진 사대부는 남자 관료였고, 궁녀와 후궁이 합쳐진 내명부는 여자관료 즉 여관(女官)이었다.


   『경국대전』「이전」 내명부 조항의‘궁녀’관련 부분

궁녀의 명칭을 보면 5품에서 6품은 상궁(尙宮), 상의(尙儀) 등 상(尙)이라는 말 다음에 구체적인 업무 내용이 들어갔으며 7품에서 8품까지는 전빈(典賓), 전의(典儀) 등 전(典)이라는 말과 함께 담당 업무가 들어갔다. 9품은 음악을 연주한다는 주(奏) 다음에 궁상각치우의 5음계가 들어가 있다.

궁녀의 명칭과 품계만 놓고 보면 마치 의례나 의식주와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는 궁녀와 음악을 연주하는 궁녀로 양분되어 있는 것 같다. 즉 5-8품까지의 궁녀들은 의례나 의식주와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고 9품의 궁녀들은 음악을 담당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와 관련하여 순종대의 윤명헌 상궁과 고봉운 상궁의 증언을 살펴보자.

“상궁 이하 주변궁(奏變宮), 수규(守閨) 이하 장의(掌儀)까지 직제는 『대전회통』 직관 제도에 설치되어 상설되어 있으나 상의(尙儀) 이하의 직은 유사시에만 적용하여 각각 그 사무의 분담이 있어서 담당 업무에 종사하고 그 의례가 끝난 경우에는 역시 이전처럼 상의 이하의 칭호가 해소되고 직제만은 전과 같이 상설된다.”(『여관제도연혁』,장서각 도서분류 2-2032)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경국대전』에 규정된 궁녀들의 명칭 및 직분이 적용되었고, 그 이외에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궁녀들은 궁중 안의 사람이란 뜻에서 흔히 ‘내인(內人)’이라 불렸고, 왕, 왕비, 대비, 세자, 세자빈 등 처소별로 배속되었다. 고종대의 기록에 의하면 왕에게 100명, 대비에게 100명, 왕비에게 100명, 세자에게 60명, 세자빈에게 40명의 궁녀가 배속되었다. 각 처소별로 궁녀들은 지밀(至密), 침방(針房), 수방(繡房), 세수간(洗手間), 생과방(生果房), 소주방(燒廚房), 세답방(洗踏房) 등에 배속되어 근무하였다. 이에 따라 궁녀 조직 또한 각 처소별로 형성되었다.

각 처소에는 궁녀조직 전체를 통솔하는 제조상궁이 있었고, 그 아래로 부제조상궁, 감찰 상궁, 각방 상궁, 각방 내인, 색장, 방자 등이 있었다. 이 중 감찰 상궁은 각 처소 궁녀들의 비리와 풍기를 감찰하는 임무를 담당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세자궁에는 1명의 감찰 상궁이 있었으며, 왕 또는 대비에게는 2명의 감찰 상궁이 있었다. 감찰 상궁은 지밀에서 근무하는 상궁이 맡았기 때문에 감찰 시녀라고도 하였다.

감찰 상궁을 보좌하는 궁녀는 색장(色掌)의 방자(房子)였다. 색장은 각 처소의 문안, 연락 등을 담당하였고, 방자는 궁녀를 위해 방청소나 심부름을 하는 하녀였다. 색장의 하녀인 색장방자는 각 처소의 정보통신을 두루 꿰고 있었으므로, 감찰 상궁은 궁녀들의 비리와 풍기를 감찰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이들을 썼다.

궁녀들의 비리와 풍기문란이 발견되면 감찰 상궁은 색장 방자와 함께 사실여부를 조사하였다. 그 결과 사실로 판명되면 제조상궁에게 보고하고 제조상궁은 처소의 주인에게 보고했다. 처소의 주인은 해당 궁녀를 직접 조사하거나 사안이 크면 내수사에 넘겨 조사하게 하였다.

저주사건처럼 심각한 사안은 국청(鞫廳)을 설치하고 양반관료들로 하여금 조사해 처벌하게 하였다.(『광해군일기』5년 6월 15일)

 

 


『광해군일기』5년 6월 15일 기사의 '감찰상궁' 부분

필자 : 신명호(부경대학교 사학과 교수)

 

■ 참고문헌
신명호, 『궁궐의 꽃, 궁녀』, 시공사, 2004.
신명호, 『조선왕실의 의례와 생활, 궁중문화』, 돌배게, 2002.

 

(드라마 이미지 출처 : MBC 드라마 '동이'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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